[데일리안 이정래 기자]'선착순 1000명. 가입비 2만원에 15만원 상당 선물 증정!'

언뜻 보면 빤한 속셈(?)이 보이는 광고성 문구 같지만 놀랍게도 2만원만 내면 15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는 기업이 실제로 있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런 마케팅을 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한국 프로야구단. 인용된 문구는 SK 와이번스의 '2008 어린이회원 모집' 광고에 실려 있던 것이다.

눈물겨운 선물공세 그러나 외면하는 아이들

SK는 지난달 11일 " 어린이회원의 가입비는 2만원이며, 가입하는 어린이에게는 홈경기 연간회원권을 비롯해 어린이의 이름과 등번호를 직접 새겨주는 맞춤형 유니폼 및 후드티, 모자, 2008 팬북, 회원카드 등 약 15만원 상당의 선물을 증정한다. 또 어린이회원이 문학야구장 내 상품매장을 이용할 경우 20%의 할인혜택을 준다 " 며 동심에 호소했다.

결과는 대성공. SK는 이날 모집개시 1시간 만에 목표인원인 1000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SK 구단 설명에 의하면 지난해에는 29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것이 분명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화끈한 선물공세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어린이야구팬을 모집하는데 15만원 상당의 선물을 준다고 유혹하는 구단은 SK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SK 못지않은 다양한 선물공세로 어린 야구팬들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1시간 만에 목표를 달성한 SK와는 달리 다른 구단들은 아직 목표 인원(삼성-LG-한화 2000명, 롯데 1200명, KIA 500명, 두산-히어로즈 미정)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야구팬들은 구단들이 어린이 회원모집을 위해 내걸은 선물의 규모를 확인하고 놀라게 되며, 그럼에도 대부분의 구단이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응원팀의 회원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이 되어야 하겠지만, 막대한 선물 공세를 퍼부어도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마저도 골수 야구팬인 부모 손에 이끌려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모를 먼저 조르는 아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필요 없는 물건은 거저 준다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다. 마치 KBO가 현대 구단을 매각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비슷하다. 지난해 프로야구가 관중 400만을 회복했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어린 야구팬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는 단지 허수에 불과할 뿐이다.

어른들만의 스포츠로 전락하고 있는 야구

굳이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 땅의 야구팬들이나 야구인들 대부분이 걱정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있다. "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가 어둡다 " 는 것.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야구는 어른들만의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특성상 게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아직 사고가 발달되지 않은 어린이들이 복잡한 규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체험하는 것. 그러나 동네어귀나 학교 운동장에서 걸음을 줄자삼아 어설픈 그라운드를 그려놓고 야구하던 꼬마들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지금의 20대 후반이나 30대에 접어든 야구팬들은 어린 시절 집 앞 골목에서 처음으로 야구를 만나고 야구에 빠져 들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야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접근성이 용이한 스포츠가 더 이상 아니다. 야구를 즐기는 어린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야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도 급격히 줄고 있다. 야구를 이해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뛸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즐길 거리가 늘어난 것도 '야구 소년'들이 사라지는데 한 몫을 했다.

또한 공과 골대만 있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농구나 축구와는 달리 야구는 필요로 하는 장비가 많다보니,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는 인식도 풀뿌리 야구를 사라지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 우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동기 부여의 실패다.

지금보다 더욱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는 야구를 즐겼다.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와 한대화의 3점 홈런으로 일본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던 그날 밤, 아이들에게 개구리번트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밤새 뒤척거리며 빨리 동이트기만을 기다리던 시절. 미치도록 야구를 하고 싶었기에 환경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동네대항 야구라도 할 때면 '선수자원(?)'이 넘쳐나 후보들까지 대기하고 있었을 만큼, 그 시절 야구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어린이야구팬으로 가입하면 선물로 받은 OB 베어스 박철순의 사인이 들어간 야구공이나 해태 타이거즈 심벌이 새겨져있는 라디오는 그들에게 재산목록 1호였다. 프로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90년대 중반과 그 시절 야구에 미쳐있던 꼬마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으로 자라난 시기가 맞물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후 한국야구는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전 국민을 잠재적 팬으로 만들었던 축구. 어린 축구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슛돌이'가 공중파 방송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어디에도 '홈런돌이'는 없다. 야구는 아이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야구팬들이 한국 야구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다. 야구가 늙고 있는 것이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프로야구의 소중한 꿈

한국 프로야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란 모토로 출발했다.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가 바로 어린이들인 것이다. 아이들이 없으면 프로야구의 미래도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손해 보는 장사'라며 한동안 어린이회원 모집을 중단했던 프로야구단들이 필요성을 절감, 다시 어린이회원 모집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막대한 물량공세를 해야 하고, 이로 인한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야구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손해 보는 장사'도 기꺼이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큰 꿈을 꾸는 '장사꾼'이 가야하는 길이다.

어느 야구팬의 " 유리창을 깨고 날아 들어오는 야구공에 화들짝 놀라서 창문 밖을 내다봤을 때, 동네 어귀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아 요즘도 골목에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하는 반가운 생각에 호통대신 미소로 공을 내어주었다 " 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사실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유리창 값을 받지 않은 '대인배'라는 것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동네에서 야구를 즐기는 꼬마들을 발견하는 것이 UFO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신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꿈을 꾼다. 동네마다 야구를 하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그런 꿈을 꾼다. 언제가 될지, 그 꿈이 이루어질 지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우리 프로야구의 소중한 미래다.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의 폭풍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눈물겨운 선물공세를 하는 '이율배반'적인 구단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