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고 있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년)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신문이었다. 파리 여행 때 몽마르트르에서도 못 찾았던 로트레크를 신문에서 만났다. <페르난도의 곡마사>, 120여 년 전 빠른 붓질을 하던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여행이다. 나는 아침마다 신문의 위력을 느낀다. 신문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그들이 살았던 시공간을 만나게 해 주는가! 신문을 보며 나는 오늘도 “고맙다”라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신문의 온갖 유혹 중 하나는 나에게 세상 구경을 가라고 등 떠미는 속삭임이다. 공중 도시 마추픽추 사진을 보고 어떻게 그 곳에 가 볼 생각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이구아수 폭포의 그 엄청난 물줄기가 수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몸 던지는 절규를 듣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현지인이 준 코카 잎을 씹으며 쿠스코의 좁은 골목에서 줄지어 달리던 택시가 된 티코를 본 순간 나라 사랑을 벅차게 느껴 볼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 할때마다 나는 신문의 위력을 절감한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로마 콜로세움의 위용을 보고,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기자의 피라미드 속 비밀스러운 길을 걸으며, 태양의 신에게 제물로 피를 뿜는 심장을 던졌다던 멕시코의 피라미드 치첸이차 위의 뜨거운 태양, 이 모두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신문의 안내 덕분이었다. 10여 년 전 신문에서 보았던 사진 한 장을 잊을 수가 없다. 영락없는 할아버지 모습인 한대수씨가 60에 얻은 갓난아기를 안고 들여다보고 있던 사진이다. 부스스한 머리의 할아버지가 손자 같은 딸아이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모습에 코끝이 찡 해지는 감동을 받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진 바로 아래 즐비하게 늘어선 부고기사 때문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 한동안 가슴이 저렸다. 저 핏덩이가 홀로 세상에 설 때까지 저 늙은 아비를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만난 적도 없는 그 부녀를 위해 화살기도를 했던 특별한 기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보던 내 곁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신문을 갖고 놀던 내 아이에게 어떤 놀이보다 더 흥미를 일깨워 준 것도 신문지였다. 아이는 자라면서도 신문을 늘 가까이 한 덕에 광범위한 지식 습득은 물론 문장 구성력을 스스로 익힌 것 같다. 그 덕분으로 아이가 논술의 어려움 없이 명문대를 가 준 것 또한 신문의 값진 선물인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필경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최고의 스승은 책 읽기다. 읽기의 최우선은 신문에서 시작된다. 나를 신비한 먼 여행길로의 유혹과 안내, 그리고 손쉽게 둘둘 말아 옆구리에 낄 수 있는 좋은 친구, 내 아이들과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모든 것이 신문이라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도 새삼 느끼며 감사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