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처음 접한 신문은 초등학교 시절 마을 이장을 하시던 아버지께 가끔씩 배달되던 농민신문이었다. 아버지는 논에 어린 잣나무 묘목을 기르거나 과실수 위에 열매가 실한 개량종 접눈을 붙여 키운 후 판매하는 일을 하셨다. 그중 일부는 아버지가 묻혀 있는 앞산에서 실하게 자라 지금도 가을이면 어른 주먹 두 배만 한 잣송이를 툭툭 안겨주곤 하는데, 그럴 적마다 풍겨오는 잣나무 향기가 아버지 미소인 양 푸르다. 논농사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린 아버지는 새마을 운동가로 뽑혀 마을 공회당마다 돌아다니며 사례발표를 하셨던 것 같다. 금테 두른 표창장과 상품으로 받아온 손목시계나 라디오 등을 들여다보며 나도 덩달아 으쓱해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학벌은 초등학교지만, 참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셨던 것 같다. 그 당시엔 쌀이 귀해 논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때였는데,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하게 한 것은 신문에서 얻은 정보와 분석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또한, 아버지는 평생 일지를 쓰셨는데 그날 읽은 신문 중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가위로 오려 공책에 밥알로 붙여놓곤 한문으로 몇 자 적어놓곤 하셨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면 매번 가위질을 하는 나의 버릇도 그때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리라. 다 읽고 난 신문지들은 차곡차곡 쌓였다가 붓글씨 연습장으로도 쓰였고, 남자아이들의 딱지가 되기도 했고, 작은 크기로 잘려 뒷간에서 볼 일 보는 동안 읽을 거리로도, 밑씻개로도 쓰였으니, 신문지야말로 가난한 시대를 밝히는 등불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아침마다 신문을 읽는다. 형이하학적인 필요에 의한 신문지와의 만남이 정보를 얻고, 세상을 바라보며 사회를 이해하고, 세계 변화를 예측하고, 나를 살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었다. 특히, 사설이나 칼럼이나 오피니언, 그리고 무엇보다 간간이 맛보는 잘 쓴 시들은 게으른 나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말랑말랑한 신문의 속살인 것이다.

2학기부터 전면 시행되는 자유학기제로 강원도 중학교는 부산하다. 학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기르고 가꿔야 하는지, 기회를 주고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도전하도록 기다려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제도. 생각하는 힘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평가 방법을 바꾸고 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가 자유학기제다.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분석하고 탐색하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학교마다 거창한, 하지만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이 2학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업 방법을 바꾸든 다양한 체험을 하든 교사나 학생이 자유학기제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신문지를 가지고도 아이들이 잘 노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교사는 얼마나 멋진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