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좁고 낮은 다락방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곳에 놓인 엄마의 정성이 깃든 작은 항아리. 주전자 모양 옆구리가 예쁘게 나온 주둥이마개를 열고 향긋한 머루주를 들키지 않게 적당히 빨아들였다. 책가방과 교과서는 최대한 멀리해도 다락방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묵은 신문을 쌓아놓고 뒤적였다. 1년치는 족히 되는 방대한 것들을 들추며 네 컷짜리 고바우영감만 속독하다가 머루주마약에 마취돼 꿈나라에 들던 그 날들이 그립다. 남들은 이사 가고 전학도 가는데 우리 집은 수십 년 그대로였다. 상당히 보존가치가 높은 묵은 신문은 그 후에도 늘 새로운 1년치가 다락으로 올라와 고전의 향기를 전해줬다. 다락방 출입이 뜸해지던 사춘기에는 신문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즐거움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공부 책은 지겨워도 의미도 모르는 신문 지면은 싫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매일 새벽을 깨우는 석유 냄새가 상큼한 신문은 날마다 기다림과 설렘이 섞인 반가운 첫 손님이었다. 까막눈을 면한 때는 고바우영감, 해가 지나며 사회면, 광고, 나중엔 다락방에서 입시 준비한다고 사설과 칼럼을 섭렵했다. 누렇게 빛바랜 신문들을 들추며 1950년대의 배고픈 날들과 1960, 1970년대의 아픈 격랑기를 넘은 셈이다. 응답하라는 1980, 1990년대까지는 그래도 자주 신문을 접했지만, 21세기를 넘어 시니어가 된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살다 보니 신문을 가까이할 때가 훨씬 적어졌다. 이따금 새벽마다 설렘 속에 찾아오는 벗처럼 기다려지던 신문, 다락방에서 들추던 묵은 신문의 향기가 새삼 그리워진다.

어느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님이 생각난다. 지금도 만나면 대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새로 해가 떴으니 “새해”가 맞다고 하는 지당한 말씀이 새삼스럽다. 새로운 매체들이 시시각각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독 신문이 점점 구석으로 밀려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수많은 발달된 매체가 늘 풍요로워도 그 옛날 매일 기다려지는 반가운 신문의 품격과 향기는 찾기 어렵다.

내 인생에 있어서 신문은 실질적인 학습능력이나 지적 토대가 형성되는 데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했다. 또 이웃과 사회를 선도하고 정화시키는 촛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시대를 가장 먼저 통찰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선구자였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의 자유로운 발전과 개선을 가로막으며 쌓아온 고정관념의 틀을 사회 구석구석에서 파 내던지고 빈곤에서 풍요로, 독재에서 자유로 가는 길목에 늘 선구자의 자리를 지켜온 언론이 있었다. 특히 매일 아침마다 기다리고 사랑했던 신문이 아프도록 그립다. 당연한 알 권리를 넘어 이젠, 사회공동체의 화합과 나라의 큰 그림을 그리는 붓과 물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스마트폰과 신문은 잇몸과 치아와 같다고 한다. 21세기에도 인류는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매체 중에 나라의 큰 중심축이 되어 국민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신문의 르네상스가 오기를 감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