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 고모께서 고종사촌 형과 함께 6·25전쟁 후 처음으로 친정에 왔다. 우리 마을에 버스가 하루 한 번 다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 통에 친정은 온전한지 궁금해 온 것이다. 고등학교 교복에 교모를 쓴 형의 모습은 너무도 멋있었고 나도 서울에 가서 학교를 다니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그 꿈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으로, 끝내는 미국 유학으로 형태를 바꾸며 자랐다. 그 꿈 덕분에 지체장애인이라고 해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나는 교수가 된 것이다.


서울에 와서 바로 부닥친 것은 언어의 차이였다. 내 고향에서 창꽃이라고 불렀는데 진달래도 모르는 촌놈, 무식쟁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극히 제한된 어휘 실력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신문이었다. 서울에 가기 전까지 신문을 본 적이 없었다. 당시는 조간과 석간이 4면으로 배달되었는데 주인집 신문이 대문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총알같이 달려가 1면과 4면을 읽었다. 그것을 펴보다가 접히거나 찢어지면 주인에게 꾸지람을 들을까 봐 조심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덕분에 참으로 많은 상식을 얻었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주인이 묵은 신문을 버리면 그것을 가져다가 거의 모든 기사를 샅샅이 읽었다. 그 덕분인지 성적이 오르고 반 친구들이 유식하다며 대화에 끼어주기도 하였다. 학교생활이 점점 즐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비슷한 경험과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10여년 전부터 모교의 어린이들을 춘천에 초청하여 1박2일의 견학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강원대학교 도서관, 영상스튜디오, 박물관 등을 돌아보고 학생식당에서 대학생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다. 그후 창의교육지원센터에서 과학 전 분야 관찰을 하며, 방송국, 도청, 도의회, 수력발전소, 애니메이션 박물관 등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체험을 통하여 보다 구체화하려는 과정에서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바로 강원일보사이다. 신문제작 과정을 견학함으로써 신문이란 언론매체가 어린이들 주변에 있음을 항상 지각하게 하고 싶어서이다. 신문 읽기에 흥미를 가지는 어린이가 단 한 명만이라도 생긴다면 나의 어린이 초청견학 프로그램은 대성공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6학년을 대상으로 4~5개 학교 어린이들이 20~30명 왔었는데 올해는 부론초교 3~6학년생들 28명만 왔다. 아마도 내가 곧 정년을 하니까 내년에는 이 프로그램이 없어질 거라고 짐작했나 보다. 이들에게 그리고 늘 왔던 귀래초교, 귀운분교, 비두초교, 취병분교 어린이들에게 현장체험학습 기회를 더 베풀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누군가가 이러한 행사를 더 많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어나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이란 참으로 우연한 계기로 누구를 만나 180도 바뀔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른들과 가진 자들에게는 어린이들과 못 가진 자들에게 꿈을 심어줄 책임도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