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마음을 떠받치고 산다. 이성을 작동시켜 논리적으로 사물과 사건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해석하지만, 때로는 감성을 통해 마음의 울림을 감지하고 그 울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 하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예민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반적으로 둘 중의 하나에 좀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 이 둘을 모두 잘 사용해서 작품 세계를 펼쳤던 인물을 추적해보자.

■ 신문자료 :

강원일보 2012년 7월12일 12·13면

강원일보 2008년 3월24일 13면

강원일보 2006년 8월28일 10면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인 박인환은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고향 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제'라는 그의 작품 마지막 부분이 “눈이여/ 옛날 시몽의 얼굴을 곱게 덮어 준/ 눈이여/ 나에게는 정서와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 나의 가난한 고장/ 인제/ 봄이여/ 빨리 오거라.”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고향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은 시대 변화의 중심지였고 새로운 문명이 교차하는 태풍의 눈이었다. 그에 비하면 고향 인제는 도무지 변화가 없는 낡고 가난한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인 그리운 공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서울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 치열하게 경쟁하던 곳이었다. 거기서 박인환은 최고의 친구이자 최고의 라이벌인 시인 김수영을 만난다.

흔히 박인환과 김수영을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시로 표현해내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두 사람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고, 그 치열한 고뇌와 갈등을 시로 표현해냈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펼쳤다.

박인환이 사용하는 시의 단어에는 이국적인 외래어가 많다. 그러나 그의 시의 내용은 대단히 감성적이어서 읽는 이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댔다. 낯선 단어들이 주는 신선함이 감성적 표현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맛보는 신비감은 충격적이었다. 따라서 당시 주로 이성적으로 시를 썼던 모더니즘 시인들에게 경계심과 부러움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박인환은 책과 영화를 대단히 좋아했다. 서울에서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곳이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 박인환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영화 관련 사람들과 친분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신선한 현대풍의 복장을 하고 다녔지만 그의 마음은 자신의 시 내용만큼 늘 따스했고 포근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 또한 대단하였다. 아내와 자녀에게 보낸 편지는 지금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세화야, 세형이 오빠하고 즐겁게 놀도록 빨리 회복해라. 할머니가 너무 먹을 것을 많이 주더라도 먹지 말고, 잘 네 몸 조심해라. 아빠는 네가 몹시 아프다는 말을 듣고 손에 아무 맥이 없다. 그리고 눈물이 난단다. 너, 내 사랑하는 딸 세화야, 빨리 나아라. 그리고 어머니 걱정시키지 말아라. 세형이 하고 잘 놀아라. 빨리 내가 집에 들 것이니 우리 다 함께 즐겁게 만나자.”

박인환은 세계사적으로 대단히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시라는 도구로 아름답지 못한 사회와 쉼 없이 싸웠다. 31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세밀한 감성은 지금도 우리 곁을 여전히 맴돌고 있다.

△토론 1.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의 차이가 무엇인가?

△토론 2. 감성적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가?

△토론 3. 토론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하는가?

이정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