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인물들은 대다수가 남성이다. 양적으로나 수적으로 여성의 활동이 남성의 활동보다 두드러지지 않아 보인다.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이 남성이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여성이 활동할 수 없는 사회적 제약이 많아서 그렇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고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제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던 여성들이 있다.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그분들의 활동은 더욱더 빛난다.

■읽기자료

△조선의 안사람, 규방 박차고 광장으로 나와 나라를 위해 싸웠다(강원일보 2012년 8월16일자 12면)

△묘역 뒤편 우뚝 솟은 잣나무 … 윤희순 義士의 기상처럼 푸르렀다(강원일보 2012년 8월16일자 13면)

△나를 婦人이라 여기지 말라 … 여성은 학문 할 수 없다는 편견 깨(강원일보 2013년 10월10일자 12면)

우리 역사에 세 명의 여왕이 등장한다. 모두 신라의 왕인데 신라에서 여왕이 가능했던 것은 골품제도 때문이었다. 신라는 부모가 모두 왕족인 진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신라의 26대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진골 남성이 없자 할 수 없이 진골 여성인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가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이 죽고 나자 진골은 선덕여왕의 동생인 진덕만이 남았다. 유일한 진골인 진덕이 왕위를 계승받아 진덕여왕이 되었다. 신라 후기에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왕위계승이 어지러워졌다. 47대 헌안왕은 사위인 경문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경문왕은 아들인 헌강왕에게 왕위를 계승시켰다. 헌강왕의 왕권은 동생인 정강왕에게로 갔다가 여동생인 진성여왕에게로 넘어간다. 선덕과 진덕여왕의 활약은 외교와 군사적인 면에서 뛰어났다. 선덕여왕은 당나라와 백제의 속셈을 알아차렸고, 진덕여왕은 지도력을 발휘해 삼국을 통일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는 고려 제5대 경종의 비이며, 제6대왕 성종의 동생이고, 제7대왕 목종의 어머니, 그리고 제8대왕 현종의 이모다. 성종 때 거란이 침입하자 대부분의 중신이 거란에 땅을 떼어주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거란은 물러났지만, 무기력한 유학자들의 모습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아갔다. 그 중심에 천추태후가 있었다.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천추태후는 정치 전면에 나선다.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불러 황제국 고려를 다시 천명했고, 강한 고려를 꿈꾸며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북방 변경 지역에 성을 쌓았다.

조선시대의 여성 지위는 고려시대보다 훨씬 낮았다. 조선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남성 중심의 사대부 국가를 형성해 나갔다. 남성 위주의 사회구조를 깨고 학문에 기여한 이들이 있다. 신사임당, 강정일당, 임윤지당, 서영수합, 이빙허각, 이사주당 등은 대표적인 여성 유학자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학식을 지니고 있었고 조선 사회의 차별적이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비판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문인으로 수학자로 과학자로 여러 저술을 남기고 뜻을 펼쳤던 조선의 여성군자였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많은 남성이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곳곳에서 활동했다. 윤희순 의사는 분연히 일어나 일본제국에 항거했다. 윤희순은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의병으로 출정하자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조달하였다. 한편 `안사람 의병가' 등을 창작 보급하여 의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 진력하였고, 여성들의 의병활동을 이끌어내는 데 적극 앞장섰다.

우리 역사 속에 뚜렷하게 빛을 내는 여성들이 있다. 한동안 가려져 있었지만 점차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가려져 있는 이들의 삶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은 후손들의 몫이다.

■토론문제

△역사 속에 여성의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낮아졌는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분야가 있는가?


이정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