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과 산타

경기가 어려워 살기가 힘들다고 해도 크리스마스 전날 명동거리는 그야말로 인파로 북적였다.

연인들의 숫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린자녀의 손을 잡고 거리를 누비는 젊은 부부들이 꽤나 많았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는 저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을까.

우리 부부는 세 자녀에게 산타클로스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조촐하게 파티를 하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아이들을 일찍 재웠다. 물론 우리 부부만의 이벤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마음속에 멋진 산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잠들기 전,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다. 먼저 착한 일을 고하고  받고싶은 선물을 이야기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말하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얼추 잠이 들었다 싶으면 마치 큰 임무를 수행이라도 하듯 집을 빠져나온다.

큰소리로 선물목록을 똑똑하게 말하던 아이들이, 어느 해부턴가 받고 싶은 선물은 비밀이라면서  소근거렸다.  그 소리 조차도 가족이 들을까봐서인지 아예 입을 다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 속을 알 수 없는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하면 네가 무얼갖고 싶어하는지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산타할아버지는 말로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가져다주신다"고 해 우리부부를 당혹하게 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알아내기위해 궁리 끝에 짜낸 아이디어가 커다란 양말에 기도문과 받고 싶은 선물을 써 넣게 한 것이다. 학년이 올라 갈 수록 아이들의 글은 반성문으로 변해 갔고, 양심에 따라 갖고 싶은 선물목록이 점점 작아졌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가 깨지는 순간 동심도 깨진다는 생각인 우리부부는 산타가 되기를 자청, 마치 007작전과 같은 공작을 5년 간 계속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명목이 혹 친구들에게 놀림이나 받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먼 훗날 엄마 아빠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인정해 준다면 친구들의 놀림쯤이아 추억으로 남길것이라 믿는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둘째딸은 2학년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아니 엄마인 나는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해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큰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 바로 그 해다. 삼남매가 둘러않아 선물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산타의 있고 없음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티격태격 실갱이가 오갔다. 산타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두 동생에게 밀리게 되자 큰 아이는

“산타는 엄마 아빠란 말이야 내가 다 봤다구”

울먹이듯 토해난 딸아이의 고백에 난 그만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멍한 기분이었다.

“3학년 때 였어. 크리스마스 전날 양말에 기도문을 써서 베개 밑에 베고 잤단 말이야.  자기 전에, 엄마 아빠 신발정리를 해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마 아빠 신발이 흩어져 있었어. 그건 바로 우리가 자는 사이 선물 사러 다녀오신 거란 말이야.”

아뿔사. 마술의 원리를 다 알고 있는 관객 앞에서 열심히 쇼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 무너졌다.

“그렇다면 산타의 존재를 확인했는데, 왜 모르는 척 한 거야”

“엄마가 알게되면  선물 준비 안 하실거잖아요.”

 이듬해부터  우리집에 산타의 방문은 없었다.  당시 허무해진 감정을 추스리느라 둘째와 셋째아이 기분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08. 12. 25